미국에서 첫 출산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내 나이는 무려 만으로 (혹은 미국 나이로) 서른. 한국 나이로 치면 32살이다.
옛날에는 서른이면 노처녀 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요즘의 서른은 그 옛날 서른과 개념이 다르다.
미국에서 자주 쓰이는 말 중에서 "30 is the new 20" 라는 말이 있다.
요즘은 대학 진학률도 예전보다 높고, 학부 외에도 더 오랜기간 공부를 하는 사람도 많고, 예전보다 늦은 나이에 졸업해서, 비교적 늦은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하다보니 늦게 돈을 모으고, 비싼 학자금 융자도 갚아나가고, 경쟁 사회에서 커리어를 쌓고 자리를 잡아가다보니, 집을 구매하는 시기도 늦어지고, 결혼의 시기도 늦어지고, 그리고 더불어 자녀를 갖는 나이도 늦어지고 있다.
나와 내 남편 주변에는 일반 학부와 비교해서 공부 기간이 긴 약대와 치대 친구들이 많다보니, 우리가 만 29살 나이에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꽤 일찍" 결혼한 커플이 되었다.
특히나 남편 치대 친구들 중에선, 4년 학부 생활을 마치고, 1-2년동안 일 경험을 쌓거나 석사 공부를 하고, 4년동안 치대를 다니고, 졸업후에 1~6년의 치과 레지던시를 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이 기간을 더하면 무려 8~16년이나 공부를 하고 사회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모든 공부와 트레이닝 기간을 마치고 나면 아무리 적어도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가 된다 (대부분이 30대 초반이나 중반쯤이나 되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워낙 공부기간이 길다보니 공부하고 트레이닝 받는 기간동안에 결혼과 출산을 하는 가정도 있긴 있는데, 바쁜 스케줄과 경제적인 요건 때문에 커리어를 갖출때까지 아이 갖는걸 미루는 가정도 많다. 물론 모든 공부와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면 일반 직업보다는 훨씬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기 시작하나 (초봉이 $150,000~300,000), 갚아나가야할 학자금 대출 또한 어마어마하다. 의대생들과 의사들도 비슷한 처지이다.
하여튼, "꽤 일찍" 결혼한 커플이였던 우리는 여김없이 "제일 먼저" 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둔 커플이 되었다.
미국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통계에 따르면, 2021년도에 첫 출산을 하는 여성의 평균 나이는 27.3살 이였다고한다 (비교를 해보자면, 2000년도에는 25살 이였고, 1970년도에는 21.4살 이였다고 한다). 여성의 평균적인 첫 출산 나이는 인종에 상관없이 모두 올랐다고 하는데, 특이한 점이 히스패닉계와 아프리칸 아메리칸 여성은 25.5살, 백인 여성은 28.1살, 그리고 아시안 여성은 31.2살 이라고 한다.
숫자가 그렇고 평균이 그렇다보니, 우리가 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렸을땐 "아이를 그렇게 빨리 가지기로 했다니 대단한 결단을 내렸다", "우린 아직 부부끼리의 시간을 더 즐기고 싶고, 아이를 가질 엄두도 안난다", "아직 커리어에서도 이루고 싶은게 많고, 아이를 위해서 희생할 자신이 없다", 혹은 "아이를 가지는건 너무 큰 책임이고, 우선 반려동물부터 키워보겠다" 등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딩크족이라고 (DINK, Double Income, No Kids) 선택적으로 맞벌이 무자녀 가정을 유지하는 커플도 있다. 그 외에도 아예 비혼 주의자인 사람들도 점점 자주보인다.
경제적인 요건의 영향
The World Bank 웹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도 United Nations Population Division의 자료에 기반한 정보) 2021년도 한국 합계출산율은 0.8명, 미국은 1.7명이였다 (합계출산율은 한명의 여성이 가임기 기간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 수이다).
출산을 앞둔 내 입장에서도 이런 현상이 이해가 가는게, 남편과 나는 둘다 약사와 치과의사로 비교적 안정적인 커리어로 사회에 자리잡았지만, 아직도 갚아나아가야할 남편의 치대 학자금 융자가 어마어마하다.
열심히 일하고, 먹고 살기 충분할 듯이 벌고 있지만, 막상 소득세와 렌트 및 물가상승의 영향을 받은 생활비를 내고 나면 타이트한 생활을 하고있다. 집 구매 시기도 어느정도 남편의 학자금 융자를 더 갚아놓은후 2년뒤쯤 타임라인을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선 출산후 정부에서 주는 출산지원금 제도가 아주 훌륭한 편인데, 미국은 그것마져도 없다. 결국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 모든 의료비 및 아이 데이케어 비용 및 nanny를 고용하는 비용 (혹은 엄마나 아빠중에서 둘중 한명이라도 일을 그만두거나 줄이고 아이를 돌보는 비용)을 부부가 알아서 부담해야한다. 당연히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것 자체가 엄청난 financial decision (경제적 결정)일수 밖에 없다.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정부기관에 따르면, 2015년도 기준으로 아이를 출산부터 17살 까지 키우는 비용은 $233,610 이였다고 한다. 그 이후의 급격한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현재 아이를 17살 까지 키우는 비용은 $310,000을 넘어선다. 그치만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게 있으니, 바로 대학 교육 가격은 여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유급 출산 휴가가 있는 주는 미국의 50개 주에서 무려 10개 정도의 주밖에 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내가 살고 있는 주에서는 다행히도 유급 출산 휴가가 있어서 임신기간부터 출산후까지 5개월 정도의 출산 휴가를 그나마 맘편하게 보낼수 있지만, 대부분의 많은 산모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출산조차도 부담스럽게 다가올수 있는것이다.
여성의 커리어
그리고 자녀를 낳게 되면, 임신기간과 출산후 기간의 여성의 커리어는 남성보다도 영향받게 되어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코워커들의 경우엔 출산후 풀타임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반, 파트타임이나 주말잡으로 돌아오는경우가 반이다. 이런 파트타임 잡의 옵션이 없는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들 같은 경우엔 아예 일을 그만두기도 한다.
게다가 유급 출산 휴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이직도 신중하게 해야한다. 내 직장에선 적어도 1년간 일했어야지 출산후 유급 휴가를 받을수 있다. 직장마다 이런 유급 휴가 정책이 다르고 복잡하기도 하고, 새 직장으로 옮긴지 얼마 안되서 출산 휴가를 가는게 눈치 보이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더 좋은 커리어의 기회가 나타나도 쉽게 이직하지 못하는 점도 있다.
나는 병원에서 항암약을 제조하는 약사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임신 사실을 안 후에 같은 병원 네트웍 안에서 스케줄이나 근무 조건이 더 좋은 항암 병원 약사 자리가 났을때 임신중이라 지원을 할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신 기간동안 유난히도 좋은 조건의 항암 약사직 자리가 좋은 직장에서 나는걸 볼때마다 좋은 기회를 타이밍 때문에 놓친것만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그런 아쉬움이 들때마다 뱃속 태아에게 미안한 마음도 덩달아 들었다).
그리고 출산을 앞두고 파트타임 약사직으로 일을 바꿨는데, 막상 파트타임으로 일을 바꾸고 나서 paycheck이 반정도로 줄은걸 보니 막상 달갑지는 않았다. 임신 전에는 남편과 어느정도 동등한 위치에서 경제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임신 기간부터는 경제적으로도 남편에게 조금 기댈수 밖에 없었고, 그리고 남편에게 경제적인 책임감의 무게를 더할수 밖에 없었다.
물론 직원이 필요하단 날엔 며칠 더 나가서 일을 하고 경제활동을 그래도 놓치 않으려고 했지만, 임신 중에 일을 하고 나면 뿌듯은 한데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임신전과 비교해서 몸도 훨씬 무겁고, 동작도 더딜수 밖에 없고, 더 조심할수 밖에 없고, 많이 움직여서 일을 해야하는 날에는 숨도 차고, 집에 와서 몇시간을 더 누워있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인게, 내 일 동료중에는 출산전에 의료적인 이유로 (좌골 신경통이 너무 심해서) 원치않게 한달정도를 일에서 숴야됬었고, 신경통이 가시고나서는 임신 막달에 다시 일에 돌아와서 출산 전날까지 일했다고 한다. 이렇게 임신 기간에는 전혀 예상못한 pregnancy complication (임신 합병증) 을 경험하는 산모들도 있고, 이런 이유때문에 일을 쉬거나 그만두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안그래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 더 돈이 필요한데 말이다).
인생의 큰 변화
주변에 임신과 출산에 관해서 물어보는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내가 매번 하는 얘기가 있다. 어쩌면 출산이 결혼보다도 더 큰 변화를 우리의 삶에 들여온것 같다고 말이다. 남편과 1년 동거를 하고 결혼을 하기로 결정 했을땐, 내 삶에 엄청난 변화가 있진 않았다. 우리 둘다 개인의 커리어가 있었고 결혼 후에도 유지했고, 오히려 남편과 살림을 합치니 렌트비나 생활비도 비교적 적게 들고, 돈을 더 수월하게 모을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자유를 크게 잃었다거나 내가 특별한 희생을 더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미 자립해서 살아가는 두 성인이 만나서 결혼을 했다보니, 서로 시너지적 효과가 있었고 결혼을 통해서 내 삶에 큰 변화를 거치치 않고서도 얻은 이익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치만 아이가 태어나는건 새로운 생명의 well-being을 부모로써 책임져야하고, 아이가 성인의 나이가 될떄까지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서포트 해주어야한다. 임신 기간에 조심하는것 부터, 출산후 휴가 기간에 일을 못하는것 외에도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하는것 등 정말 신경쓸 부분이 많다. 일터에서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아프거나, 데이케어가 문을 닫거나, family emergency가 있으면 일 결석을 하거나 일에서 일찍 조퇴를 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 한 타운에서 이사를 가지 않고 계속 거주하거나 (새로운 타운으로 이사갔을때 아이가 적응하기 어려울까봐), 부모가 좋은 out-of-state 이직 오퍼를 받았을때도 그 결정을 아이가 대학갈때까지 미룬다. 그 외에 가족끼리 여행을 다닐때에도 아이들의 방학시간에 맞춰서 여행을 다녀야하고, 아이들 학교나 과외활동에 맞춰서 라이드도 챙겨줘야 한다.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아서 아이를 키우는 뿌듯함이나 행복함을 모르지만, 이런 변화에 관해서 들어만봐도 출산이란건 정말 큰 결정이라고 다시 한번 느껴진다.
내 일 동료의 말에 의하면 주변에서 제일 행복해 보이는 부부는 아이가 없는 친구부부라고 한다. 그 이후에 그나마 행복해 보이는 부부는 아예 아이를 일찍 나서 일찌감치 키우고 노후를 부부 둘이서 재밌게 보내는 부부거나, 아니면 오히려 아주 늦게 아이를 낳아서 젊을때 둘이서 충분한 시간을 갖은 부부 같다고 말이다. 나의 또다른 동료의 말에 의하면, 아이가 뱃속에서 태어나서 세상밖으로 나오면 그때부턴 부모로써 평생 아이를 위한 걱정이 따라다닌다고 말이다. ^^ 그만큼 출산을 하면서 따라오는 경제적, 시간적, 감정적, 생각적, 부부관계적 변화들이 삶을 통두리채 바꿔놓을수 있다는게 기대되기도 하면서 두렵기도 하다.
결론
이런 현실에도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아이를 갖기로 결정했다. 멋모르고 어릴적엔 3명까지도 낳아서 키울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뿜뿜했지만, 어느새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우리 부부 둘다 우선 한명만 낳아서 키우고, 얼마나 힘든지 겪어보고, 둘째까지 낳아서 키울지 곰곰히 따져보자는 의견이다.
많은 우리 윗세대 분들은 "한명만 낳아서 키우면 아이가 외로워 한다", "한명보다는 두명 낳으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서로 의지한다", "두명을 같이 키우면 한명 키우는것 보다 수월하다"라고 조언을 하시는데, 그건 그분들이 아이를 양육한 시대의 조건에만 해당하는 의견일지도 모른다. 우리 세대는 아이들의 외로움 혹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형제자매 관계로써 얻는 감정적 안정감보다, 우리 부모 개인의 행복감, 부모의 경제적 안정감, 부모의 자유성, 부모의 삶의 만족도, 부모의 커리어에서 오는 성취감 등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실제로 여기는 커플들도 많다).
인생에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를 갖기로 했건, 여러명을 갖기로 했건, 혹은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건 그건 다 각자 커플의 결정이고, 그 결정에서 오는 책임과 장단점 또한 커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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