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후감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 이진송 에세이 <정리 +리뷰+생각>

톡톡소피 2020. 12. 22. 11:36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는 1988년생 이진송 작가가 쓴 에세이입니다. 작가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 연애칼럼니스트라고 합니다. 이 책은 페미니즘 에세이로서, 사회가 요구하는 갇힌 여성상을 꼬집는 내용들이 정말 시원시원합니다.

 

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61182393

 

전체적으로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여성들이 가정에서 여자아이로 길러지면서 대담하게 반박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만 했던 부분들까지도 작가가 신랄하게 꼬집고 그것에 질문을 던지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들이 너무 많았던 책입니다.

책의 목차부터 봐도 책의 느낌을 알 수 있는데요.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출산하지 않아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살림 밑천이 아니어도", "사랑스러운 딸이 아니어도", 그리고 "친구 같은 딸이 아니어도" 같은 내용들이 있답니다.

작가는 책을 시작하면서 그리스 신화의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을 소개합니다. 그 강도는 지나가는 사람을 자신의 침대에 눕힌뒤에, 사람이 침대보다 크면 몸을 잘라내고, 침대보다 작으면 침대에 맞춰 늘려서 죽였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사회가 여자들을 우겨넣고 자르고 늘이며 맞추려는 이상적인 '여성'의 틀 역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지 않을까?"... "그곳에서 여자는 언제나 기준 미달이거나 규격 초과의 존재이다." 여성의 행동이나 보이는 부분은 "평가와 교정의 대상이다." 작가가 이렇게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과 우리 사회가 여성을 향한 들쑥날쑥한 기준을 비교하는데, 정말 그 판단 기준의 부조리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 판단하는 인간들은 얼마나 완벽하기에 다른 사람들을 그들만의 잣대로 함부로 평가하는 것일까요?

실제로 저도 딸로서 20대 후반의 여성으로서 (미국에서 살아가지만 미국 한인 사회에서도) 정말 많은 지적과 판단을 당했습니다. 저는 키도 작은 편이고, 여드름 피부를 가지고 있고, 약대를 다닐 적엔 한동안 예쁘게 꾸미고 다닐 여유도 없었습니다. 특히나 미국 한인 사회의 중심인 교회에서는 제가 일주일 내내 하루도 쉬지 못하고 실습을 돌다가 주일날에도 오전에 예배를 나왔다가도 오후엔 병원에 일하러 가야 되는 상황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교회 집사님들 몇 분이 제 머릿결, 옷차림, 화장 덜한 피부를 보고 평가를 했습니다. 결국은 그 집사님들이 제 흉 본 얘기가 제 엄마에게 까지 와서 엄마에게 외모 지적을 당한 후 (아줌마 같이 하고 다닌다고) 엄마랑 싸우고 몇 달을 대화를 끊은 적도 있습니다.그분들이 남의 험담하며 시간 낭비할 동안 저는 제 몸값을 키웠습니다. 지금은 그 바쁘게 살던 몇 년의 희생으로 인해서 저는 적어도 그들이 버는 3-4배의 임금을 받고 여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꾸밀 수 있는 금전적 시간적 여유도 많습니다. 이렇게 정말 사회에서 저희 삶에 별 영양가 없는 사람들이 평가 기준을 대고 저희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 한다면, 크게 무시하시고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계속 살아가세요.

 

"연애하지 않아도" "결혼하지 않아도"

작가는 시원하게 말합니다. "여자는 물건이 아니고, 원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길에 떨어져 있지도 않지만 모두들 호들갑을 떨며 '짝'을 찾아주려 하는 것이다." 정말 이상한 사회 현상은 누군가가 애인이 없으면, 꼭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을 동정하고 곧 짝을 찾을 거라고 위로하곤 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자발적으로 연애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매력이 없는 사람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삶의 가치가 다르듯이, 연애나 결혼을 선택적으로 하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연애지상주의는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싱글인 친구에게 "누구도 빨리 짝을 찾아야 할 텐데...", "왜 남자들이 누구의 매력을 몰라봐주지?", "다 때가 있는 거랬어. 곧 누구도 남자 친구 사귈 거야" 같은 영양가 없는 조언을 하곤 합니다. 정말 그 친구가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면 친구로서 저런 영양가 없는 말이나 내뱉지 말고 차라리 그 친구 소개팅을 하나라도 더 시켜주는 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도 저런 말투가 알게 모르게 배어있다면, 우리의 생각을 점검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친구가 싱글이던 연애 중이던, 그 친구가 행복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면 그게 정답 아니겠어요?

 

"방긋방긋 웃지 않아도" "싹싹하지 않아도"

작가의 시원시원한 주장을 읽으면서 속이 뻥 뚫립니다. "누군가는 타인의 '웃지 않음'을 지적할 권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자신의 감정과 무관하게 언제 어느 때고 웃어야 한다." 드라마에서 보거나 우리가 자주 마주한 여성 신입 사원 이미지를 연상하면 싹싹하고, 애교도 있고, 보스의 재미없는 농담에도 잘 웃어주는, 그런 이미지가 왜 떠오를까요? 우리 사회에서는 특히나 여성들이 이런 애교나 웃음이 없으면, 왜 흔히 싹수없고 지잘난맛에 사는 이미지로 비칠까요?

저는 작가의 이 표현이 참 마음에 듭니다. "방긋방긋 웃는 것, 과다하게 맞장구치는 것,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드는 것 등은 여성으로 태어난 순간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옵션이 아니다." 작가는 여성은 "미소 자판기"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합니다. 

 

"가족을 용서하지 않아도" "살림 밑천이 아니어도" "사랑스러운 딸이 아니어도" "친구 같은 딸이 아니어도"

시중에는 엄마와 딸의 틀어진 관계에 관한 책이 꽤 있습니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엄마나 가족이 딸에게 바라는 이상적인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만큼 많은 딸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엄마에게 미움을 품은 딸들에게 작가는 그런 감정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사회에선 그런 딸들에게 "독한 년" 소리를 할지어도, 그것은 사회가 그 아이의, 그 딸의 입장에서 살아보지 못했으니까 멋모르고 손가락질하는 것이지요. 

특히나 큰 딸이나 철든 딸의 역할을 해내는 딸들은 이런저런 맘고생을 합니다 (저도 큰딸로서 이 마음을 압니다). 어떤 여성들은 가족들의 밥을 차려주는 역할을 맡아야 하고 (남자 형제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와중에), 어떤 여성들은 자신들이 일해서 벌은 수익을 부모님께 다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작가는 이번에도 깔끔하게 정리해 줍니다. "딸은 살림 밑천이 아니고, 그럴 의무도 없다."

친구 같은 딸의 역할도 여러 모순이 있습니다. 말은 뭔가 이상적인 엄마와 딸 관계를 표현하는 것 같지만, 표면을 들춰보면 엄마의 취향이나 의견을 친구처럼 수용해야 하는 딸, 엄마에게 친구에게 털어놓는 것처럼 사실을 털어놔야 하는 딸, 엄마의 하소연을 묵묵히 친구처럼 들어주고 그 슬픔이나 고통의 부담을 같이 짊어져야 하는 딸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아무 편견 없이, 저자가 페미니스트 성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이 작가의 관점들이 신선하면서도, 왜 이렇게 진작에 우리가 이런 타당한 생각들을 하지 못했을까 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강요된 역할이나 모습에 억지로 우리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이 부조리한 요구들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던 건 아닐까요? 무조건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한 모습이라고 억지로 맞추고 따라가지 맙시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계속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