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포스트는 미국에서 1.5세 한인으로 살아가는 제 생각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의식에 흐름에 따라 제 자신을 오픈업 하고 써보겠습니다. 다른 1.5세 분들의 댓글도 기다립니다. 우리가 같이 공감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
1. 1.5세 한인인 저를 소개해요.
저는 중1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 와서 7학년부터 미국 공립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뉴저지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30대 초반이고 병원 약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흘러 보니, 인생의 반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왔네요.
2. 미국에서 처음 1-2년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친해지느라 영어를 배우느라 고생했어요.
한국에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 힘든데, 다른 언어를 쓰는 미국으로 이민 오고 미국 공립학교를 간 첫날, 그리고 첫 일-이년은 쉽지 않았어요. 감사하게도 좋은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에 차별받지 않고 별 탈 없이 재밌는 중. 고등학교 생활을 했지만, 그 가운데에 내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내가 이곳 미국 사회에 속할 수 있을까, 내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었어요. 특히나 영어 때문에 자신감이 많이 없던 적도 있지요.
미국 공립학교에 처음 간 날부터 특히나 첫 일 년은 survival이었던 것 같아요. 다행히 한국 친구들이 몇 명 있어서 그 친구들의 도움도 받고, 친구들의 집에 pajama party에도 초대받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친구를 사궈서 외로움은 크게 없었어요. 그렇지만, 수업시간에는 거의 하나도 못 알아듣고, 숙제를 하는 데에도 남들은 20-30분이면 할 분량을 공부하는데만 2-3시간 넘게 걸렸어요. 처음 6개월은 교과서 (textbook)에 있는 단어를 하나하나 인터넷이나 전자사전을 써서 찾아가면서 배웠어요. 그땐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없었고, 저처럼 이민 온 친구들은 수업에 전자사전 들고 다녔어요. 그러면 미국 친구들이 와서 "Wow, what is that? That's so cool!" 이러고 그랬죠. ㅋㅋㅋ
그땐 정말 힘들었던 기간이었는데, 되돌아보니 그때만큼 제가 열심히 꾸준히 이 악물고 공부했던 적도 없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기본적인 영어 단어랑 영어 표현들을 배우기에 꼭 필요했던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 6개월 정도를 하루에 4시간 정도씩 숙제하는데 쏟다 보니, 기본 영어 표현들을 익히고나서부터는 어느 순간부터 시험 볼 때도 전자 사전을 쓸 필요가 없게 됐습니다. 일종의 작은 성취였었죠. 그리고 미국 TV 본 게 좀 도움이 됐어요. 저는 그때 The Suite Life of Zack & Cody, High School Musical, 그리고 SpongeBob SquarePants에 푹 빠졌었답니다.
3. 1년 반 ESL 과정을 마치고, ESL 수업을 나가야 할 때는 걱정이 앞섰어요.
실은 ESL 수업에 더 남고 싶어서, 선생님께 졸랐는데, ESL 시험 성적으로 봐서는 이젠 나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특히 백인이 대부분이고 아시안이 13% 정도인 곳의 학교를 다녀서, 특히나 더 ESL 수업 밖은 두려웠던 것도 있어요. 뭔가 ESL을 떠나면, 이제 어느 보호도 받지 못하고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할 것 같았죠. 이민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excuse 없이 미국 아이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그렇게 여겨질 것이 두려우기도 했죠. 예를 들면, 미국 처음 왔을 때는 프레젠테이션 발표할 때 버벅거리고 몇 마디 못해도 선생님들께서 봐주셨는데, ESL을 나오는 이후부터는 더 이상 "깍두기"가 아니었던 거죠. 울며 겨자 먹기로 나오고 나서 일반 영어수업을 들어갔을 때는 처음 몇 년은 많이 막막했습니다. 수업을 못 알아듣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를 들어갈 때쯤부터 영어 수업이나 다른 수업의 내용을 조금씩 점점 더 알아들었던 것 같아요.
4. 학교에서는 아시안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게 좀 더 편했던 것 같아요.
중고등 학교를 다니면서 백인이나 다른 인종의 친구들을 다양하게 사귀었었어요. 마칭밴드랑, 밴드부, 크리스천 클럽, 봉사 클럽, 볼링 클럽, 환경 클럽, 수학 클럽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게 됐죠. 그래도 점심시간에 같이 앉아서 먹는 친구들 (소위 저랑 친한 친구들)은 아시안 친구들이었어요. 저희는 일본, 중국, 한국 여자 친구들이 모인 테이블이 있었답니다. 9학년 때부터 12학년 때까지, 그렇게 4년을 함께 같은 친구들과 런치 테이블을 사용했죠. AP나 Honors 수업에 가면 특히나 중국 친구들이 많았어서 그렇게 같이 점심시간에도 앉아서 먹었답니다. 서로 수업 노트도 공유하고, 숙제도 베끼고, 가십도 하고, 슬립오버 파티도 하고, 그러다가 12학년 프롬 (Prom) 댄스도 같이 갔답니다.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인이다 보니까 점심때 도시락을 싸가도 눈치가 덜 보이고, 심심하면 한국 드라마나 새로 나온 아이돌 노래 얘기하고 그랬답니다.
5. 한인타운, 한인마트, 한인 레스토랑에 들릴 때면 신이 났었어요.
저는 한인타운에서 4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곳에 살아서, 한인 타운에 자주 들릴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간혹 릿지필드나 포트리 한인마트에 장 보러 가거나 팰팍 한인 레스토랑에 들릴 때면 너무 신이 났었어요. ㅎㅎㅎ 한인 타운 가까운데 살고 한인 타운에서 학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중간중간 카페 가서 한국 빵이랑 버블티 마시는 게 부러웠었죠). 그때 그게 한으로 맺혀서 그런지,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고 한인 타운 주변 동네로 독립해서 이사 왔습니다. 이젠 자유롭게 제 차로, 제 돈으로, 원할 때 언제나, 먹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사 먹는데, 너무 행복합니다.
6. 부모님 개인 비즈니스 도와드리고, 부모님 대신 customer service에 연락하는 게 제 몫이었죠.
하, 이건 저 말고도 다른 1.5세 친구들이 많이 경험해봤을 거예요. 저희 부모님도 개인 비즈니스를 운영하셨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집에서 쉬고 싶은 제 의지와는 다르게 주말에 종종 나가서 도와드리고 그랬답니다. 부모님이 주말에도 일하셔서 친구들이랑 놀러 가고 싶어도 라이드 받기가 힘들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이 버라이존이나 은행에 전화하실 일이 있으시면 꼭 맏딸인 제가 도와드려야 했었죠.
7. 거의 2세에 가까운 동생과 1세 부모님 사이에 낀 1.5세, 그들의 통역사가 돼본 적 있나요?
제 동생은 만으로 4살 때 미국에 와서, 거의 미국인에 가깝습니다. 거의 2세여서 한국말이 서툰 동생과 영어가 서툰 부모님 사이에서 저는 1. 그들의 언어를 마음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통역사, 2. 동생을 타일러서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누나, 3. 올바른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 누나, 4. 동생 대학 갈 때 SAT 준비나 장학금 신청이나 여러 가지 정보들을 알려줘야 하는 잡학 지식 누나 등의 역할을 해야 됐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건데, 여자들이 제일 원하는 형제자매 순서가 1. 언니, 2. 여동생, 3. 오빠, 4. 남동생이라고 합니다. 누나로써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아주 잘 알고 있죠...
그리고 저같이 맏딸인 친구들과 많이 하는 얘기인데요, 저희 첫째들은 기니피그예요. 저 대학 입시 준비할 때는 저랑 부모님들이랑 제가 언제 SAT를 봐야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11학년 2학기부터 준비했답니다 ㅋㅋㅋ 제 동생은 부모님이 9학년 때부터 SAT 공부시킨 것 같아요. 저는 실험용이었고, 동생은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적용하셔서 키우셨죠.
8. 교회 = 만남의 중심 그리고 교회 = 의지할 곳
물론 저랑 종교가 다르신 분들도 읽고 있으실 수 있지만, 저에겐 신앙이 정말 버틸 수 있는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주늑들때, 이민 와서 적응하기 힘들을 때 교회에서 만난 저와 비슷한 1.5세 친구들을 사귀고 좀 위로받았어요. 어떤 때는 금요일에 있는 교회 금요 모임과 일요일만을 매주 기다리기도 했어요. 저희들은 정말 비슷한 점들도 나눌점들도 많았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내내 하루 종일 영어만 사용하다가 금. 토. 일 내내 한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자유로웠습니다.
9.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싶은 마음
1.5세 친구들끼리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린 0개 국어를 한다고. 한국어는 점점 어눌해지는 것 같고, 미국에 이렇게 오래 지냈는데도 원어민처럼 말하기가 어렵다고. 미국에서 이렇게 오래 살았는데도, 한국 힙합 노래를 듣고, 한국 스킨케어를 쓰고 (미국 화장품보다 좋지 않아요???), 직장에서 동료들이랑 한국 음식이랑 한국 뷰티 얘기를 하고, 쉬는 날에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고, 한인 타운 가까이서 살고, 친구들이랑 만나면 한인 타운에서 밥을 먹고 꼭 카페 가서 빙수를 시키죠. 그리고 휴가는 꼭 짧게 2-3주라도 한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한국을 이렇게 그리워하면서도, 힘들게 사신 우리 윗세대 분들의 희생과 어려움을 봐서라도 우리 1.5세대는 꼭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싶어 합니다. 신분문제가 해결이 되면 그나마 걱정이 덜 하지만, 신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친구들은 그것 때문에 정말 고민과 걱정을 많이 했답니다. 저희들은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지 말고 살아가라고 저희 부모님들은 전문직이나 기술직으로 가라고 많이 푸시하셨죠. ㅎㅎㅎ 부모님들께서 원하시는 직업들은 소위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들 이였죠 = 의사. 치과의사. 약사. 간호사. 변호사. 회계사 이런 부류 정도. ㅎㅎㅎ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런 사자로 끝나는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는 제가 됐네요. 이렇게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사는걸 어떻게 보면 남들이 추구한다는 아메리칸드림을 이뤘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완벽히 정착을 하진 못한 것 같은 느낌이 항상 드는 것 같습니다. 언제쯤 이런 감정이 멈출까요?
10. 나와 같은 1.5세 짝궁을 만나다.
제 나이 20대 후반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랑 같은 1.5세 의료 전문직 신랑과 3년반 연애후 결혼을 앞두고 있네요. 주변에서 친구들이랑 만나면 나오는 얘기 중에 꼭 빠지지 않는 얘기가 연애 얘기지요. 일반적으로 1.5세들은 1.5세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 제 의견인가요? ㅎㅎㅎ 저희 여자 친구들 의견을 합하자면, 나랑 종교가 같고, 나보다 영어를 수월하게 잘하고, 한국말을 알아들을 정도로 하고, 어느 정도 안정된 직업을 가진 (나보다 수입이 더 높아도 좋고), 미국과 한국 문화들 둘 다 잘 아는, 한국 음식도 잘 먹고, 부모님께 소개해도 당당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제가 원하던 교회 오빠 이미지의 1.5세 신랑을 만나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희가 자라온 환경이나 주는 다르지만, 같은 1.5세라서 그런지 저희는 공통적인 경험들도 많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부모님 일 도와드리고 해결해드린 경험도 있고, 미국 처음 와서 적응하던 어려움도 알고, 그런 어려움들이 우리를 얼마나 강인하고 독립적인 사람들로 단련시켜주었는지, 1.5세로써 얼마나 우리가 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 잡고 싶은지, 우리가 자리 잡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와주고 싶은지, 우리가 이렇게 자리 잡아가면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열할 수 없는, 일일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공통적인 분모들이 많답니다. 이런 인연이 참 감사합니다.
끝맺음
10가지를 쓰는데도 더 쓰고 싶은 마음을 누르면서 썼답니다. 그만큼 1.5세로써 같이 공유하고 싶은 감정이 계속 흐르네요. 뭔가 쓰면서 제 이민 첫 시절을 생각하면서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감정들이 스쳤습니다. 1.5세로써 살면서 느끼는 점에 더할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 달아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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